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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리바람이 불면~
년전 고관절 수술 뒤 정기검진차 병원에 온 동생이랑 엄만테 간다. 병원에서 바로 출발하려던 계획은 휴대폰을 깜빡한 내 기막힌 정신머리에 어그러지고,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 챙겨 다시 출발~ 지난번 면회, 누가 젤로 보구싶으냐 딸이 묻자 내새끼 다보구 싶지~ 하던 엄마에게 다른 새끼 하나 더 델구 달려간다. 이런~ 근데 달달한 두유를 커피라고 맛나게 드신지 꽤 된 엄마에게 드릴 두유가 편의점에 없다. 지난번에도 없어서 꿀물을 대신 드렸더니 이번 커피는 맛이 읎어 그만 먹을래 하셨는데..... 하여 꿀물과 달지 않은 두유를 함께 섞어드리기로 했다. 면회실로 나오는 엄마는 등장부터 평소와 다르다. 늘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고, 먼 허공을 살피시는 엄마는 이미 어딘가에 생각이 꽂혀 한참 흥분한 상태~ 한쪽을 향..
한달 만에 엄마를 찾았다. 내 삶의자리가 우선이다보니 엄마에게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다. 날짜를 정해놓고 가는게 아니라 기분내킨 날 바로 준비해 나서는 길이라 들쭉날쭉이다. 그날도 그렇게 길을 나섰다. 아주 가끔(1-2년에 한번 쯤) 어린시절 맛있던 기억에 콩죽을 끓인다. 팥죽만 아는 우리식구들은 콩죽을 입에도 대지 않지만 어린시절 기억이 떠오를 때면 콩죽을 조금 쑤어 혼자 먹곤 한다. 엄마에게 갔다와야지 생각이 든 날, 무얼 해갈까 냉장고를 살핀다. 채소서랍에 얌전히 누워있는 생협 콩물 두 봉지, 아~ 좋다! 오랜만에 콩죽을 쒀야겠다. 엄마에게 전화하니 뭘 그런 걸 힘들게 하냔다. 일단 긍정이다. 찹쌀과 멥쌀 1:2 비율로 씻어 불려 급하게 압력밥솥에 진밥을 하고 넓은 냄비로 옮겨 콩물을 부어 뭉근히 ..
야트막한 산 기슭 아래에 있는 붉은벽돌의 이쁜 성당, 한번 들러봐야지 했던 안흥성당에 엄마에게 왔다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코로나19 여파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한 채 밖에서 몇 컷 찍은 성당 외관은 작은 면소재지에 있는 성당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커보였다. 이렇게 이쁜 성당 어느 한 켠에 지금은 1달에 한번 모시는 봉성체와 묵주기도로 신앙생활을 대신하는 엄마의 손길도 녺아 있을터, 가슴이 아려온다. 중학교 들어가서야 '공소'라 부르는 천주교 시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군에서 막 제대한 뒤 발령받아 오셨다는 스포츠머리의 체육선생님은 촌아이에게 최고의 우상이었고 가슴설레는 존재였다. 그 멋진 선생님이 다닌다던 천주교회-그래서 알게 된 공소, 그 공소에 다니던 친구에게 '공소예절'이라는 작은 ..
장독대와 작은 꽃밭이 있던 뒤란에 눈이 소복히 쌓였다. 스레트 담장으로 세월만큼 빠르게 담쟁이가 기어오르고 엄마가 사시는 오래된 흙집에 밤새 흰눈이 내렸다. 아버지 이 세상 뜨시고 혼자 고향집을 지킨 스물 네해~ 기력이 다한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밤이 무섭다. 퇴행성 황반변성이 온 엄마의 눈은 이제 엄마를 깜깜한 어둠속에 가두고, 그렇게 중도실명으로 십여년 버틴 엄마는 밤마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온 몸의 촉들이 돋아나는 세상에 가장 두려운 밤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밤은 깊어 모두 잠든 시간, 까무룩 잠들었다 소스라쳐 깨기를 반복하며 엄마의 얕은 밤은 느릿느릿 지나간다. 해가 지고 제법 시간이 흐른 밤, 쥐들이 달려들어 아~ 흙벽과 천정, 엄마의 마음이 소란스럽다. 어린시절, 천정을 달려다니던 쥐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