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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불어 좋은 날

울4식구 한가위 여행, 목포-통영3-목포근대역사관

babforme 2022. 10. 7. 22:04

김암기 미술관에서 기획전시중인 김암기오마주전 관람을 끝내고

경사 급한 계단을 따라 목포근대역사관을 찾아 내려온다.

목포근대역사관(구 목포 일본영사관)에 들러 북촌과 남촌의 슬픈 역사를 알기전까지

목원동, 유달산 가는길 팻말이 붙었던 비탈진 동네(북촌)와 확연히 다른 

세련?된 동네라는 인상이 지배적이었다.

잘 구획된 거리에 그시대(일제강점기)의 관공소가 모여있고 근대 도시면모를 모두 갖춘 곳!

일제의 목포 수탈이 공적으로 시작된 곳, 남촌 일본인 거리~

유달산 노적봉 햇살 잘드는 남쪽기슭에 목포근대역사관(일제강점기 목포영사관)이 있었다.

 

목포근대역사관 들머리, 건너편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 있었다.
구 목포 일본영사관 들머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만든 조각상.

전쟁의 아픔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2011년 12월 14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000차 수요집회 때 세워졌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이다.

1920~1940년대 조선 소녀들의 일반적인 외모를 가진 단발머리 소녀로 의자 위에 손을 꼭 쥔 채 맨발로 앉아 있다.

단발머리는 부모와 고향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며,

발꿈치가 들린 맨발은 전쟁 후에도 정착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방황을 상징한다.

소녀의 왼쪽 어깨에는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새는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소녀상이 있는 바닥에는 할머니 모습의 그림자를 별도로 새겼다.

소녀상 옆에 놓인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났거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모든 피해자를 위한 자리다.

빈 의자에는 관람객이 앉을 수도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조각가인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의뢰로 제작했다.

건립 위치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이다.

2012년 첫 제작 이후 구미, 부산, 의정부, 고양, 수원, 세종, 광주, 목포, 광양 등 국내 여러 지역에 세워졌다.

지역에 따라 모습이 다른 소녀상도 있으며, 부산의 경우 중국인 소녀상도 함께 세워졌다.

중국은 한국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피해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해외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미시간 주에 세워졌으며,

2015년 11월에는 캐나다 토론토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었다.    -다음백과

 

2021년 현재 국내 144개, 해외 32개의 소녀상이 세워졌다는 게 정의기억연대의 집계다.

 

차마 어깨를 감쌀 수 없던.....
인력거
잎을 모두 떨군 무심한 나무가 목포근대역사관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무 뿌리가 방공호 입구 시멘트 위로 뻗어 드러나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뒤편 유달산 아래 조선인을 강제동원해 만든 인공동굴 방공호를 돌아나와

맹맹해진 코 훌쩍이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느날 문득 끌려와 제대로 된 도구도 없이 온전히 먹지도 쉬지도 못하며 고된 노동을 강요당했을

우리 동네 혹은 옆동네 동무 또는 청년이나 아저씨

먹먹한 가슴, 나라를 뺏긴 힘없는 국민들의 아픔이 절절하다.

부와 권력을 가졌으되 무능하기만 했던 위정자들에 더해

자신의 이익을 탐해 일제와 결탁했던 일부 지식인과 앞잡이들이 재생산돼 지금도 반성없이 활개치는 해방?된 나라,

늘 힘없이 짓밟히던 민초들이 목숨걸고 지켜온 나라, 대한민국은

오늘도 민초들의 피눈물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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