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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하늘을~!

해미성지

babforme 2022. 6. 2. 16:18

해미읍성과 해미성지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

어지러웠던 조선왕조 말기에 정치적 이유나 역사적 사건이 얽히면서 100여년에 걸쳐 일어났던

가톨릭 박해의 현장, 해미읍성으로 잡혀온 천주교우들은 그곳에서 고문을 받고 갇혀있다가

해미천 주변 성지에서 생매장당하거나 자리개질, 또는 웅덩이에 수장을 당하며 순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억지로 한가?해진 날들을 견디며 그 해미에 꼭 한번 가보리라 먹었던 마음!

예수마리아를 부르며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생매장당한 순교자들이 잠든 곳, 해미성지에 왔다.

 

 

성지(순례지):

신자들이 교구 직권자의 승인 아래 특별한 신심 때문에 빈번히 순례하는 성당이나 그 밖의 거룩한 장소.(제 1230조)

교회법전이 말하는(제 1231조, 제1232조 참고)성지의 종류;
첫째, 교구장이 승인하는 교구 성지
둘째, 주교회의가 승인하는 국가 성지
셋째, 교황청이 승인하는 국제 성지

2020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에 ‘해미순교성지’가 교황청이 승인한 '국제 성지'로 선포됨.

 

이미 선포된 국제성지

 

① 역사적 장소(3곳):· 이스라엘(예루살렘), · 이탈리아(로마), · 스페인(산티아고)

② 성모 발현지(20곳):· 멕시코(과달루페), · 포르투칼(파티마), · 아일랜드(크녹),

· 프랑스(기적의 메달 성당), · 프랑스(루르드), · 이탈리아(로레토), · 폴란드(체스토코바)
· 아르헨티나(성모대성당), · 프랑스(라 살레트), · 이탈리아(폼페이), · 이탈리아(제나차노)
· 일본(아키타), · 프랑스(퐁맹), · 이탈리아(시실리), · 벨기에(보랭), · 벨기에(바뇌)
· 스페인(필라), · 바바리아(알토팅), · 멕시코(오코트란), · 미국(산타페)

③ 성인 관련 순례지(5곳):· 이탈리아(카시아, 성 리타)
· 이탈리아(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와 클라라), · 이탈리아(마테르 도미니, 성 제랄드 마젤라)
· 이탈리아(산 지오반니 로톤도, 성 비오), · 프랑스(리지외, 성 데레사)

 

국제성지로 선포된 역사적인 장소, 성모님 발현지, 유명한 성인 관련 순례지와 견주어 볼 때

이곳 해미국제성지는 독특하다.

유명한 성인이나 특별한 기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기록으로 이름이나 행적을 남긴 분들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기록을 남기지 못했지만 해미는 1000명이 넘는 분으로 추정되는 많은 순교자들의 체취와 흔적이 남아있다.

해미국제성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하느님 안에서 기쁘게 살다가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고 묻힌 무명 순교자들의 고향인 것.

그래서 이곳은 슬픈 역사의 땅이라기보다 기쁨과 생명의 현재를 묵상하는 곳이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비참하게 생매장 당했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그 누구보다 빛나는 이름을 받았을 무명 순교자들을 가톨릭교회가 신앙의 모범으로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전 세계에 알린 영광스러운 사건이 ‘해미 국제 성지’ 선포인 것.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었던 무명 순교자들처럼,

하느님 안에서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남기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은총을 함께 청하며  하느님이 가장 기억하실

무명 순교자들을 통해 기도하고, 해미 국제 성지를 순례하며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가꾸어 나갈 수 있기를!

-해미성지 소개글에서 발췌 갈무리

 

무덤 모습으로 지어진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발굴된 유해들
자리개돌
수장 둠벙
야외성당

해미 성지는 당시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백 년의 박해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서슬이 무뎌지지 않았던 해미는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웅덩이와 구덩이로 내몰린 채 생매장당한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다.

이 박해 기간 동안 해미 진영에 있었던 두 채의 큰 감옥은 잡혀 온 교우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매일 서문 밖으로 끌려 나와 교수형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으로 죽어 갔다.

또 더욱 잔인하게 돌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메어치는자리개질이 고안되기도 했고,

여러명을 눕혀 두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꿈틀거리는 몸뚱이를 발견하면 횃불로 눈을 지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학쟁이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 한다.

특히 1866년 병인년에서 1868년 무진년에 이르는 대박해 시에는 시체 처리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생매장을 하기도 했다.    해미 진영의 서녘 들판에 수십 명씩 끌고 가 아무 데나 땅을 파고 구덩이에 산 채로 집어넣고

흙과 자갈로 덮어 버리는 참혹한 행위가 수없이 되풀이 됐다.

이렇게 스러져 간 순교자들은 그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순교자들 중 132명의 이름과 출신지를 남기고 있으나 그나마도 불확실하고

나머지는 이름 석 자 하나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들이다.

이들이 숨져 간 유적지는 "예수 마리아"를 부르는 교우들의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라 알아듣던

주민들의 입을 통해 '여숫골'이라는 지명으로 전해오고 있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해미 읍성에는 교우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가 있고

그 옆에는 고문대로 쓰던 호야(회화)나무가 남아 있다.

순교자들은 이 나무에 머리채를 묶인채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다.

서문 밖 순교지에는 1956년에 서산 성당으로 이전, 보존되었던 자리개 돌다리가

1986년에 원위치를 찾아 보존되다가 2009년 1월에 여숫골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1935년에는 서산 본당 범 베드로 신부가 발굴한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들이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돼 있었는데 1995년 순교자대축일에 원래의 순교 터인 생매장 순교지 순교탑 앞으로 이장됐다.
(해미천 주변에 1866년부터 1872년 사이에 1천명 이상 생매장 당한 순교자들의 유해는

대부분 홍수로 유실되고,1935년 그 일부만 발굴하였다.)


해미 성지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성지는 한티 고개이다.

이 고개는 당시 죽음의 길로 악명 높던 순교자들의 압송로로 달레의"한국 천주교회사"에도 그 기록이 나온다.

-해미성지 소개글에서 발췌 갈무리

 

함께 한 길동무 형님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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