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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하늘을~!

풍수원성지, 6월 28일

babforme 2022. 7. 7. 11:59

풍수원성지를 처음 갔던 때가 언제였더라~?

교구 성경봉사자회에 들어가 얼마 안되었을 때니 스무해하고도 몇해 더 지났나보다.

성지가 있는 횡성군에서 중학교 때까지 살았는데도 거의 끝과 끝인 서원면엔 가본 적이 없었지.

그러다 우연히 같은 길 떠났던 '우리끼리~ 길동무 3인방'이 해미읍성에 갔던날,

해미성지도 순례하면서 '다음엔 풍수원도 함 갈까요~?'에 모두 콜한 것!!!

 

이십 몇 년 전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며 풍수원성당에 도착하니 오~ 많이 바뀐 것 같다.

하긴 강산이 두번 넘게 바뀌는 시간이 흘렀으니 말해 무엇하랴~

 

고즈녁한 풍수원 성당 전경
단아한 성당 출입문
성당 현관
단정한 성당 안 -사진촬영금지 싸인에 후다닥 휴대폰을 잠근다.
어서 오라는 듯 예수님이 두 팔벌려 반긴다.
역사관이 된 예전 사제관
성체조배실
성체조배실 옆 성모동산
성당 뒷모습
4복음서 상징 부조 장식을 한 성당 뒤 출입문 두개

마태복음-사람, 마르꼬 복음-사자, 루카복음-황소, 요한복음-독수리

 

풍수원 성당 초대 주임 르메르 신부

풍수원성당(초대주임 르 메르 신부)은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했고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에 이르렀다.

아직 서양식 성당 건물을 알지 못했던 이들은 초가집 20여 칸을 성당으로 사용했었다.

 

복원한 초가집 성당

 

풍수원 성당은 1888년 6월 20일 강원도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강원도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때는 신유박해가 일어나던 1801년경,

박해를 피해 서울과 경기도 용인 등지에 살던 교우들이 강원도나 충청도 산간 지역으로 숨어들면서부터다.

이렇게 숨어든 교우, 신태보 베드로는 40여 명의 교우들과 함께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에 자리잡아 교우촌을 이루었다.

그뒤 1866년 병인박해와 1871년 신미양요로 고향을 떠난 많은 교우들을 불러 모아 한불조약(1886)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기까지 80여 년 동안 평신도들로만 이뤄진 신앙 공동체로 믿음을 지켜왔다.

1888년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는 신자들의 열망에 따라 풍수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르 메르 신부를 임명했다.

2대 주임 정규하 신부가 중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현재의 성당을

1905년 착공하여 1907년 준공하고 1909년 봉헌식을 거행했다.

강원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자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번째 성당인 풍수원 성당은

1982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고,

성당보다 5년 늦은 1912년 건축에 들어간 구 사제관은 원형이 잘 보존된 벽돌조 사제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2005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이런 교회사적, 문화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풍수원 성당은 횡성군과 함께 성당 일대에

유현 문화관광지(바이블 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단계 사업으로 성당 뒤에 강론 광장을 조성하고 유물전시관을 건립하여 2013년 4월 축복식을 가졌다.

이어 유물전시관 뒤에 가마터와 원(院)터, 쉼터 등을 조성하며 2단계 사업을 진행하였고,

2018년 6월에는 구 사제관을 복원하여 풍수원 성당 역사관으로 축복식을 갖고 개관했다.

 

풍수원 성당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체 현양 대회가 열리는데,

제1회 성체 대회가 1920년에 실시된 이래 6 · 25로 빠진 3년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왔다.

오랜 역사만큼 30여 명이 넘는 사제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로서도 풍수원 성당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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