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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리바람이 불면~

숸이라는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서로 삶의 자리가 달라 전화통화외에 자주 만나기는 힘들었던 ㅈ자가 연락을 해왔다. 금요일까지만 일하면 퇴직한다고, 3년 전에 코로나로 강제 퇴직?한 나나 동무나 참 오래도록 일을 했다. 주부라는 퇴직없는 일은 여전히 남아있지만......ㅎㅎ ㅈ자의 길었던 일을 끝내는 퇴직기념으로 우리는 한번 뭉치기로 했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유년의 동무들 몇몇이 이참저참 만나 밥 한끼 같이 먹기로 한 것~! 하여, 광명에 사는 ㅈ오기, 인천에 사는 ㅁ나미, 숸에 사는 ㅈ자와 나, 거기에 갑자기 연락이 닿은 춘천에 사는 ㅇ수니까지 다섯이 뭉치는 계획~ 숸역에 모두 모이면 숸역 근처에 사는 내가 픽업을 하는 것으로 입을 맞추었다. 춘천에 사는 ㅇ수닌 뒤늦게 코로나에 걸려 이번 만남은 아쉽게 ..

오늘, 엄마 95번째 생신, 요양원에서 두번째 맞는 생신이다. 방배동 큰딸과 수원 작은딸, 산청 막내딸이 엄마생신 면회를 가는 길~ 큰언니와 동생이 아침부터 서둘러 서둘러 우리집으로 모이고, 간단하게 준비한 생신음식 챙겨 길을 나선다. 지난해, 큰언니랑 함께 했던 (요양원모시고) 첫 생신엔 외부음식 안된다고 난리였는데 올핸 또 얼마나 눈치를 보며 미역국에 밥 한술 드시게 할까? 열심히 달려 12시 25분쯤 요양원 도착! 면회를 신청하자 이제 막 점심드시기 시작했다고 기다리란다. 오늘은 점심이 좀 늦은듯~ 에공, 일찍들 점심드시기에 지금쯤은 점심시간이 끝났으려니했는데 이제 시작했다니 기다려야지. '지금 막 점심드시기 시작했는데, 쬐금만 드시게 하고 여기서 드시게 해야되나?' 면회실?에서 기다리는 사이 사무..

괴산현충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세해째, 이번 아버지 기일엔 형제들이 삶의자리에서 시간맞추기 어려워 각각 찾아뵙기로 했다. 자식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왔다가는 것보다 1월 한달 동안 세번이나 아버질 찾아온게 더 좋지 않으셨을까? 막내의 상차림엔 달달구리 마카롱까지 올라갔네. ㅎㅎ 이뻐라했던 막내가 가져온 프랑스 과자 마카롱도 드시고 글로벌하게 잘 쉬고 계시다가 다시 반갑게 만나요. 아버지......

면회를 신청하고 한참 뒤에 엄마가 나오신다. 컨디션이 좋으신지 면회실로 나오며 'ㅁ수나~' 하고 크게 이름을 부르는 엄마다. '엄마, 난줄 어떻게 알고 이름을 불러요?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어? 그럼~! 니가 ㅁ수니잖아. 오~ 대단한데, 딸이 온 걸 알고 이름을 부르다니......' ㅎㅎ 시작은 좋다. '섬바골(선바위골)에 배 떠있는거 봤니? 어~ 섬바골에 배가 있었나? 엄마 난 못봤는데..... 신이 떠내려갔어. 섬바골 그 깊은 물에 엄마 신이 떠내려갔다고? 내가 가서 건져올까? 그래, 갈아앉아있음 건지면 되는데 떠내려가서 없지? 엄마~ 없네, 떠내려갔나봐. 이왕 떠내려간거 걍 한켤레 다시 사지뭐~ 신발이 없다. 신발이 없어. 신을 잊어버렸잖아~ 어떻하지? 신을 챙겨와야 집에 가는데...... 너 집에..

지난해 12월 첫날, 울집에서 '온'식구들 모두 함께 밥을 먹은 뒤 시간은 또 바람같이 흘러갔다. 그사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엄마를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모신 속앓이에 내코가 석자인 날들, 그러다 ㅇㅅ이 수업을 정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1월20일 유투브에서 수업에 쓸만한 자료 하나 찾아보냈다가). '죄송해요. 다 정리됨 말하려고 했는데.....' 그랬구나~ 그런 결정을 내리고 말았구나! 이러저런 생각과 많은 고민 끝에 내렸을 결정, 그 고독함이 남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아 맘이 아리다. '밥이나 먹게 함 오소~ '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애썼노라 밥 한끼 같이 먹는 정도일터, 3월 대선 기막힌 결과에 정신줄 놓은 시간들을 또 속절없이 보내다가 문득 서천마량리 동백이나 보러갈까? 톡을 한다...

행복했던 제주의 시간이 후다닥 지나 2박3일 여행의 끝날~ 아침은 조식 뷔페로.....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오름과 제주의 풍광이 아름다운 식당에서 행복했던 기억들을 가슴에 꼭꼭 눌러담으며 아침을 먹는다. 제주 중산간 오름과 숲으로 둘러싸인 리조트, 코로나시국에 이용객이 상대적으로 적어서인지 뷔페식이 부실한 느낌~ 그래도 숙소로 넘나들던 제주 산간 안개자욱한 몽환적인 길들과 식구들 함께 한 여행이 환상이었으니 행복하게 체크아웃~! 2박3일의 환상적이었던 환갑여행은 끝이 났다. 이제 삶의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게 나잇값하고 살 궁리 제대로 해야 할 때, 애써보자~!!!

내게는 대녀가 7명이 있다. 결혼하고 수원에 둥지를 튼 뒤 한 동네에서 30년 가까이 살며 시나브로 한명씩 대녀가 태어났다. 대모 노릇도 제대로 못하며 줄줄이 낳기만 한 불량대모다. 서른살 늦은 가을에 세례를 받고 견진성사를 받기까지 10년 이상 묵삭였다. 견진 뒤 처음 쌍둥이로 대녀를 맞으면서 '괜찮은 대모가 되어보리'라던 야무진 꿈을 뒤로 하고 2006년까지 5년 간 7명의 대녀를 본 뒤 '그저 그런' 대모로 살고있다. 그런 대모가 이사했다고 대녀들이 울집을 찾아줬다. 나름 7명 모두 만날 수 있는 날들을 잡았었으나 녹록치 않은 삶의 자리에 상황이 바뀌며 결국 두 대녀는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 꾹꾹 누르며 대녀들 삶의 자리에 고운 꽃 피어나길 두손 모은다.
11월이면 나는 이미 세상 뜬지 30년이 넘은 작은언니 생각이 난다. 은행잎 노라니 물들어가던 날, 그녀는 떠났다. 12살 딸아이 하나 달랑 남겨놓고 어찌 떴을까? 눈도 감지못한 채 황망히 떠난 언니~ 스트레스가 머리꼭지까지 넘쳐나던 삶의자리 나름 잘버티는가 싶더니 아니었어. 그러니 아프던 심장이 터졌을거야~ 망나니 같았던 남의편이 슬퍼서 너무 슬퍼서 아파서 너무 아파서 죽을듯이 살다가 그렇게 심장이 터졌을거야~ 그 망나니 남의편은 부인과 오래 해로하고 싶으면 스트레스 주지말라던 주치의의 충고?를 가볍게 묵살했지. 언니심장이 더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 그 망나니 남의편은 숨쉬는 것마져도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어. 그렇게 언니는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