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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기억 끄집어 내어2-두번째 외국여행 2007. 1.26-30. 캄보디아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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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기억 끄집어 내어2-두번째 외국여행 2007. 1.26-30. 캄보디아2

babforme 2021. 10. 18. 22:15

기억나는대로 방문했던 앙코르 유적지 중심기록.

왜곡되고 잃어버린 기억에 사실과 다르기도 할터......

 

지금보면 사진을 참 못찍었다.

그렇다고 지금 사진을 잘찍는다는 얘긴 절대 아니고, ㅎㅎㅎ

휴대폰과 삼성의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갔었으니 필름카메라였던 첫 태국여행보다 카메라는 조금 더 좋아진셈~

그럼에도 사진의 양은 늘었으되 사진의 질은 태국 때와 진배없다는......ㅠㅠ

 

1.롤루오스 유적군

롤루오스 유적군(Roluos Temples)은 크메르 제국 초기 유적지로 씨엠립 남동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다.

롤루오스는 ‘앙코르’로 수도를 옮기기 전, 자야바르만 2세가 수도로 택한 지역이다.

이 유적군에 프레야 코 사원, 롤레이 사원, 바콩 사원이 있다.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나가상-해자에 걸쳐누워 바콩사원을 지키는 7개의 머리를 가진 뱀?
바콩사원

바콩(Bakong) 사원은 881년 인드라바르만 1세가 힌두교 비슈니신과 시바신에게 바친 사원.

인공으로 쌓은 산(언덕) 위에 두개의 해자와 성벽을 두르고

5개층으로 쌓아올린 피라미드 형태 가장 가운데 연꽃모양을 형상화한 중앙탑이 있다.

 

바콩사원이 갖는 의미

1, 크메르 제국 최초 국가 사원.

2, 크메르 제국 최초 Temple mountain산모양을 따 지은 사원. -신은 산위에 있다?

3, 최초로 사암을 이용해 만든 앙코르 유적.

4, 앙코르 왓을 비롯한 앙코르 대형 사원의 모델.

 

롤레이 사원

롤레이(Lolei) 사원은 893년 야소바르만 1세가 시바신에게 바치려 인공섬 위에 지은 사원.

야소바르만 1세가 선왕의 업적을 기리려 저수지 한 가운데 사원을 만든것.

(야소바르만 1세의 아버지 인드라바르만 1세는

국민들이 오랜 가뭄에 시달리자 최초로 ‘인드라타타카타’라는 저수지를 만듦.)

  힌두 신화는 신들의 고향인 메루산이 대양에 둘러싸여 있는것으로 생각한다. 

성스러운 소-시바신이 타고 다닌다는 흰소,난디(Nandi) 왕의탑 앞에 앉아있다.
프레아 코 사원의 린텔(문을 지탱하는 윗부분)부조

프레아 코(Preah Ko:성스러운 소) 사원은 롤루오스 최초(880년) 사원.

인드라바르만 1세가 조상들의 공덕을 기리려 세운 힌두사원으로  6개 붉은 석탑에 조상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탑은 석회몰타르(Lime mortar)와 라테라이트(홍토) 벽돌로 지어졌다.

엄청났던 영화를 뒤로 하고 부서지고 방치된 채 세월만 쌓이는 씁쓸한 유적,

국가가 아닌 영리가 목적인 민간기업이 관리한다니 어떤 기대를 더할 수있을까!

 

반테스레이 사원

반테스레이(Banteay Srei) 사원은 씨엠립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 있다.

967년 라젠드라바르만 왕이 힌두교 시바신에게 바친 사원으로
라젠드라바르만왕이 사망하기 1년 전 완성됐다고. 
이 사원은 왕실사원이 아니며 사원 건축을 주도한 이는 '야즈나바라하'는

라젠드라바르만의 조언가(counsellor) 중 한 사람이었고, 후에 자야바르만 5세가 된 왕자의 스승(guru)이었다.

 

크메르말로  'Banteay'는 성채, 'Srei'는 여성 또는 미(美)를 뜻한다니

Banteay Srei는 ‘여인의 성채’ 또는 ‘美의 성채’라는 말이다.

즉 아름다운성채 사원~ 이름만으로도 아름답다. 

그러기에 크메르 예술의 보석, 크메르의 진주라고도 한다지.

 

2. 앙코르 유적군

앙코르(Angkor)는  톤레삽호수 북쪽에 있는 유적으로, 9-15세기까지  크메르제국의 수도였다.

이곳에 앙코르왓, 앙코르 톰이 있다.

앙코르(Angkor)는 크메르어로 '도읍, 도시'를, 왓(Wat)은 '사원'을 뜻하니 앙코르왓은 '사원의 도읍(도시)'가 되고

앙코르 톰의 톰(Thom)은 크메르어로 '큰'을 뜻하니 앙코르 톰은 '큰도읍(도시), 대왕도',

앙코르 유적군의 중심은 앙코르왓이지만 규모로 보면 앙코르 톰이 이름처럼 훨씬 크다.

 

앙코르왓으로 들어가는 서쪽 길, 드넓은 해자를 가로질러 길게 놓여있다. 

해자 폭은 190m, 해자둘레는 무려 5km에 이른다.

해자는 동쪽의 흙으로 만들어진 제방을 통하거나, 서쪽의 돌이 깔린 보도를 통해 건너갈 수 있다.

서쪽의 돌깔린 길이 주 출입로.

이 돌깔린 길을 프랑스와 일본이 복원을 했다고 가이드가 설명했었지.

근데 프랑스가 복원한 쪽은 멀쩡했는데

일본이 복원했다는 돌길은 많이 망가져있었다는 기억 한자락이 떠오르네. ㅎㅎ

 

앙코르왓의 봉오리 탑신- 5개의 탑신은 수미산의 다섯봉우리를 상징한다고
거의 기다시피 올라가야 했던 3층 중앙탑
내려오는 길은 더 아찔했다.
앙코르왓 앞에 서 있는 우리 식구들~
앙코르왓-해자에 비친 앙코르왓이 아련하다.

앙코르 와트(Angkor Wat) 씨엠렙의 앙코르에 있으며,

12세기 초 수리야바르만2세가 30년에 걸쳐 크메르제국의 사원으로 지었다. 

앙코르 유적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크메르 제국의 모든 종교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비슈누신에게 바쳐졌고, 나중에는 불교 사원으로도 쓰였다.

 옛 크메르 제국의 수준 높은 건축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이며,

 캄보디아의 상징이기도 해 국기에도 그려져 있는 세계적 관광 명소이다.

 

앙코르톰 남문 출입다리 인면상
앙코르 톰

앙코르 톰(Angkor Thom)은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7세가 세운 옛 크메르제국의 마지막 유물군이다. 

앙코르 톰의 중심에는 자야바르만의 상이 있는 바이욘사원이 있고, 그 위쪽 광장 주변으로 주요 유적군이 있다.

주위의 유적군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앙코르왓과 함께 앙코르문화의 쌍벽을 이룬다.

 

앙코르 톰 남문-요기로 들어서면 바이욘사원이 있었지, 아마~
우리팀 가이드
바이욘사원

바이욘(Bayon) 크메르제국의 마지막 국가사원으로 대승불교사찰로 지어졌다.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 톰 한가운데에 지은 국가 최고 사원으로 메루산을 상징한다. 

바이욘의 가장 큰 특징은 탑신 사면에 조각된 고요히 웃고 있는 얼굴상들이다.

이 얼굴상들이 주는 신비스런 미소의  아름다움 때문에 '앙코르(크메르)의 미소'라고도 불린다.

앙코르 톰의 남문을 지나 1.5km 쯤 가면 만날 수 있는데 앙코르왓보다 100년정도 뒤에 세워졌다.

바이욘의 본 이름은 '자야기리(Jayagiri)'였으나

캄보디아의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 프랑스인들이 부처의 형상이 많이 새겨져있는

이 사원의 이름을 '반얀 사원(Banyan Temple)'이라 했다.

캄보디아 독립뒤, 캄보디아인들이 '반얀' 발음이 안돼 '바이욘'이라 부르면서 사원이름이 바이욘으로 굳어졌다고.

 

타 프롬사원

타 프롬(Ta Prohm) 앙코르 유적군 중의 하나로,

12세기 말에 불교사원으로 건립된 뒤 힌두교 사원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유적이다. 

자야바르만 7세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만들었다고.

260개의 신상과 39개의 첨탑 그리고 566개의 집단 주거 시설을 갖춘 이 사원은

 3000명의 성직자와 1만2000명의 일꾼들이 관리했다는데 지금은 폐허가 돼 뽕나무과에 속하는

스펑나무가 유적을 휘감아 삼중의 회랑을 뒤덮은 거대한 나무의 기묘함이 무섭기까지 하다. 

천장과 돌기둥이 무너져 내리며 주변이 빠르게 밀림으로 뒤덮이고

유물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사원은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았다.

 거대한 뱀같은 나무 뿌리는 건물 담과 벽을 뒤덮어 신을 향한 사람들의 노력을 지워가고? 있다. 


거대 나무와 유적이 뒤엉킨 타 프롬 사원에 관광객이 몰리자,
캄보디아 정부가 나무와 유적이 뒤엉킨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로 하면서

성장억제제를 정기적으로 주사해 나무 뿌리가 더 이상 사원을 파괴하지 않도록 막고있다지.

 

다시 가고픈 곳, 캄보디아 크메르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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