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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

엄마면회- 3월 2일

babforme 2023. 3. 2. 23:41

엄마 생신에 다녀오고 계속 일상이 애매하게 꼬이면서 엄마에게 두 주 넘게 가지 못했다.

논네 많이 기다릴텐데 싶어 편치 않은 마음,

지난주 가려던 엄마면회도 생각지도 못한 배터리 방전에 갑작스레 꽝이 되고

오늘에서야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달달구리 커피랑 간식 쬐끔, 그리고 뜨거운 물을 담은 텀블러를 챙긴다.

 

차가 별로 없는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려 엄마에게 가는 길,

오늘 컨디션은 어떨는지......

 

엄마 간식
환하게 웃는 엄마

이쁜 비니를 쓰고 나오신 엄마는 나올 때부터 평소같지 않게 몬가 들떠? 계셨다.

휠체어를 미는 요양사님의 딸이 왔다는 말에 딸이 누군지 모른다며 해맑게 웃으며 대꾸하던

엄마는 늘 감고 계시던 안보이는 눈도 번쩍 뜬채 위쪽을 향해 고개를 들고 계셨다.

'엄마~ 오늘은 눈을 크게 뜨고 있네? 모 좋은일 있어요? 기분이 무척 좋아보이는데..... 

예~? 눈을 떴다고? 눈을 떴어도 암 것도 안보여~ 누구예요? 딸? 딸이 누군지 몰라..... 

모야~ 딸을 모른다고? 숸 사는 딸, 딸 목소리도 그새 잊어버렸어요? 

엄마~ 내가 지난주 사정이 있어 못왔다고 노여운거? 그래서 모른다는거? 알써요~ 딸을 기억못해도 간식은 드실거쥬?

엄마~ 커피 드실래? 엄마가 커피 고파하는거 같아서 다른 음료 말고 이 달달구리 커피만 가져왔어요~ ㅎㅎ

커피? 응~ 커피 줘~! 근데 그이들은 여기 사니? 누구? 여기 산에 그이들 사는거 아냐? 그이들이 누군데 산에 있어요?

그이들이 나를 여기 데려다 줬어. 옷도 입혀주고 모자도 씌워주고 이거 긴옷 이것도 입혀줬어.

아~ 요양사분들이 엄마 춥지 말라고 이렇게 옷 입혀주고 면회실로 모시고 왔네.

몰라요, 여기 산이 시끄러워~ 몬 애들이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 넌 아무소리 안들려?

아~ 엄마, 여기 학교 옆이라 애들이 떠드나 보네. 학교에 댕겨? 니가?

엄마~ 내가 누군데? 너 ㅁ수니지~ 이제 딸이 생각났어요?

느네 산에 살지? 엄마, 누가? 아들.딸들이 산에 산다고? 산에 딸하고 아들이 없으면 내가 몰라 힘들게 산에 왔겠어?

니들이 안오니 내가 힘들게 왔지. 여기다 처박아 놓고 오지도 않잖아~ 엄마 몬소리야~ 누가 안찾아왔는데?

엄마 그렇게 말함 딸이 섭하지. 지난주엔 차 배터리가 나가고 일이 겹쳐서 못왔지. 그래서 우리 엄마가 노엽구나? ㅎㅎ

아무도 안오지. 처박아놓고, 그러니 쓸쓸해도 그냥 살아야지. 안죽는데 어떻게 해......

옥수수 땄니? 옥수수 따야지. 아직 안땄는데 어떻게 할까? 옥수수가리에서 옥수수 땄어?

응 그건 땄어. 그럼 이제 옥수수 알갱이로 따면 되지? 그래, 그거 기계에 넣고 돌리면 옥수수 알갱이 떨어져 나왔잖아. 

알았어요. 그거 돌려서도 따고 걍 송곳으로 골질러 손으로도 딸게. 알갱이 다 따면 어떻게 할까?'

엄마는 아주 오래전 옥수수 따던 양철 기계를 기억해내고 계셨다.

'그이들은 차타고 갔니? 누구? 솔밭말 할머니들? 응, 아 그분들 버스타고 가셨어~ 아~ 그랬구나~

엄마는 여기서 볼일 다보고 제차타고 가면 되니 걱정말아요. 그럼 되지모~ 걱정 안해.'

 

달달구리 커피를 받아 마시며 맥락없이 뜻모를 말씀만 하시는 엄마는 아주 완전히  딴 세상에 계셨다. ㅠ ㅠ

 

커피를 드시며 행복해보이는 엄마
무언가 보이는 것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말씀하시는 엄마

'니가 궂은일 했지. 내가 무슨 궂은 일을 했을까? 땅 팠잖아~ 아 내가 땅팠구나~ ㅎㅎ

딸이 땅파서 농사를 제대로 지었나 몰라~?

큰오빠는 농사 안지은지 오래됐지? 큰오빤 어디사니? 안양, 안양 살고 오빠는 농사짓지 않았어.

농사는 아버지가 지었지. 근데 농사 안지은지 30년이 다 됐는데.....

아버지 돌아가신게 벌써 25년이고 돌아가시기 전에 편찮으셔서 농사 못지었잖아~ 아~ 그랬구나~ ㅎㅎㅎ

오빠가 몇 형제야? 응? 오빠가 몇 형제? ㅎㅎ 엄마~ 엄마 아들이 둘이고 딸이 넷이야.

그니까 엄마 아들, 오빠는 2형제, 큰아들, 작은아들이 있어. 그래서 큰오빤 안양살고 작은 오빤 원주살고.....

작은오빤 여기 살지? 여기 어디? 여기 안살어? 근데 밭에다 모 심는다고 했잖아~

 아~ 맞아, 작은오빠는 원주에 사는데 솔밭말 밭에다 농사지었어. 아~ 그랬구나~ ㅎㅎㅎ'

엄마는 집에 계실 때 작은오빠네가 밭농사를 짓던 어슴프레한 기억에 다른 기억들을 뒤섞어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옥수수 다 땄니? 예, 다 땄어요. 얼마나 되니? 한 한가마쯤. 장날에 내다 팔까? 아니, 팔지 말고 우리가 먹어야지.

능궈서 옥수수쌀 만들어요? 그래야지. 그럼 맷돌에다 타갤까? 맷돌질 하면 힘들어. 그렇긴 하지.

개울건너 방아간가서 능구고 타개서 옥시기쌀 오빠네 한 말주고, 작은오빠네도 한 말주고 나도 한 말 줘.

쌀이 귀하니 밥할 때 섞어먹어야지. 안양은 쌀이 안귀한가? 쌀은 다 귀하지.

그지? 안양애들도 옥시기쌀 먹지? 너도 한 말 가져가고, 큰언닌 옥시기쌀 말고 안타갠 옥시기로 줘.

큰딸은 뻥튀기를 좋아하니까 울산 작은집하고 뻥튀기해서 먹으라 해. 

근데 작은오빠 아프니? 아니 안아픈데..... 꿈이었나? 내가 봤어. 그게 아주 쬐끄맣게 쪼그라들었어~ 뭐가?

엄마 걱정하지 마셔. 아무도 안아파. 엄마는 아파? 아니, 안아프니 병원도 안가지. 이제 집에 가야지.

안아파서 병원도 안가니 여서 집에 가야지.'

엄마는 1시간을 아프다 소리 없이 힘들어하지도 않고 요양원측에서 저녁드실시간이라고 면회를 중단시킬 때까지

해맑은 얼굴로 먼 기억 속을 헤메고 다니셨다.

 

기도중인 엄마
여전히 위쪽을 향해 고개를 든 엄마랑 딸이랑 한컷~!

면회시간 끝나서 딸이 가야한다고 마무리기도하자니 바로 성부와 성자와 하면서 성호경을 긋는다.

기도를 하고도 또 이런저런 말씀을 하는 엄마, 결국 요양사님이 휠체어를 돌리고

담주에 오겠다는 딸의 인사에도 엄마는 해맑게 그이들은 밥먹었냐고 딴 소릴 하면서 들어가셨다. 

 

엄마의 어느 한순간의 기억처럼 화성 성벽에만 넘어가는 햇살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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