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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

엄마 면회, 5월 17일

babforme 2023. 5. 18. 11:24

지난 주엔 두 오빠들이 주초와 주말에 엄마에게 갔다는 이유로 나는 한주 쉬었다.

그리고 오늘, 엄마 입맛이 어떨까 싶어 오랜만에 엄마가 좋아하던 씨없는 청포도 약간과

커피 하나는 넘 작다고 해서 달달구리 커피 두봉지를 챙겨 엄마에게 간다.

길은 뻥 뚤려있고, 여러 까닭으로 밤잠을 설친 나는 연신 하품이다.

 

요양원 뜰엔 이미 초여름이 성큼!
포도와 달달구리 커피-포도는 반개도 안드시고 퇴짜~ ㅎㅎ

면회실로 나온 엄마는 그사이 또 쌩하니 생뚱맞다.

'유춘자씨~ 네! 유춘자씨 맞아요? 네, 저 유춘잔데요.

유춘자씨? 그럼 저는 누굴까요? 몰라요. 어떻게 알아요. 누군지 모른다구요?

정말 누군지 모르겠어요? 목소리도 생각안나요? 네, 몰라요. 누군지.....

유춘자씨~! 네~? 아~ 이러면 섭하지요? 모르면 알려고 노력을 해야되지 않겠어요?

글쎄 모르겠는데 어떻해요~'

지난주 화욜엔 작은오빠네가 왔었고 토욜엔 큰오빠네가 엄마보러 왔었잖아~

글고 이번주엔 내가 왔는데 누군지 몰겠다고라? ㅎㅎ

'일단 눈이나 좀 떠봐요~ 눈떴어~ 여봐, 눈떴잖아~ 엄마 이게 눈뜬거야? ㅎㅎ 알써요.

엄마 눈 번쩍 잘떴네. 근데 여전히 눈이 그대론데..... 에고~ 울엄마 눈곱이 본드가 됐네.

가만 있어보셔, 눈곱 좀 닦아내게......좀 아플 수도 있어요.'

 

'엄마~ 어쨌든지 누가 왔는지 모르겠으면 우선 커피나 한잔 하고 얘기합시다~ ㅎㅎ

엄마, 커피드릴까? 커피~? 좋지. 커피 맛있어. 커피 줘~'

누군지 모른다고 시큰둥하던 엄마는 커피 소리에 화색이다.

뜨거우니 후후 불면서 천천히 마시라는 딸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는 커피를 받아들고......

근데 이상하다. 지금껏 손떨림은 없었는데...... 커피를 든 손이 조금씩 떨리더니 웬걸 점점 심해지는 손떨림,

이제 손떨림 현상도 올만큼 엄마 기력이 다하는건가~

커피가 너무 적다는 엄마에게 커피 더드릴까 하니 오늘은 또 하루에 하나만 먹으면 된단다. ㅎㅎ

천천히 커피를 다마신 엄마는 그제서야 생각이 났나보다.

'딸이 왔나? 맞아, 엄마~ 딸이 왔어. 이제야 생각이 난거야? 지난주엔 두 아들들이 왔었지? 엄마 좋았겠어.

사진보니 큰아들이랑 영자언니 같이 왔던데. 응~ 영자가 왔었어. 영자가 올때 누구더라~ 황, 황....생각이 안나.

아~ 엄마 상식이? 그래,상식이 델고 온댔는데...... 왜 엄마 상식이 보고 싶어? 맨날 오더니 오래 안와서 보고 싶지.

영자언니가 상식이 델고 온댔어? 근데 안델고 왔네. 요즘 농사철이라 상식이가 바쁠걸~ 농사철인가?

그럼, 벌써 감자는 심었을테고 이제 논에 모내기해야 할거야~ 그래서 못데려왔나보지.

그릉가~ 벌써 모를 심을땐가? 그럼, 엄마 지금 5월도 다갔어. 그렇구나~

엄마에게 자식이 있을까? 없을까? 있겠지. 맞아, 엄마 자식이 있어. 딸이 넷이고 아들이 둘이야.

세상에 내가 자식이 글케 많아. 응 엄마가 자식 농사를 잘지어서 풍년이야. 자식이 6이나 되잖아. ㅎㅎ 

그럼 엄마 많은 자식들 이름 한번 말해볼까? 큰딸은? ㅈ자, 큰아들은? ㅇ지니, 작은아들은? 작은아들이 누구더라~?

ㅎ지니, 맞다. ㅎ지니, 작은딸은? 미자~ (오옹? 놀라워라, 이미 하늘나라로 떠난 작은딸 미자를 여간해선

입에 올리지 않았던 엄마인데.....) 맞아, 엄마 작은딸은 미자야. 어떻게 미자가 생각났네. 미자는 요즘 모하니?

엄마, 작은딸 미자는 죽었어. 벌써 30년도 넘었어. 아, 미자가 죽었어? 왜? 심장이 많이 아팠어. 그랬구나~

셋째딸은? 세째는 누구더라? ......ㅁ수니, 그래, ㅁ수니, 막내는? ㅁ수기.....

에고~ 잘했네. 엄마가 이렇게 자식을 많이 낳았어. 그럼 그 자식들이 결혼해서 또 자식들을 낳았을까?

낳았겠지. 맞아. 자식들이 결혼해서 엄마 손주들을 많이 낳았어.

큰딸은 아들 둘에 딸을 하나 낳았어. 손자 둘에 손녀 하나 더하면? 3~! 와~ 아주 잘했네. 작은딸은 손녀를 하나 낳았어.

 손주 3명에 손녀 하나를 더하면? 4명~ 맞아~ 울엄마 산수 아주 잘하는데......큰아들도 손녀 둘을 낳았어.

손주4명에 손녀 둘을 더하면? 6명, 손주가 6명. 울엄마 수학박사네. 작은아들은 손자를 둘을 낳았거든.

손주 6명에 손자 둘을 더하면? 8명, 세째딸은 손자를 두명 낳았어~ 손주 8명에 손자 둘을 더하면? 10명,

막내는 손자를 하나 낳았어. 손주10에 손자 하나를 더하면? 11명. 야~ 엄마 오늘 엄마 산수 넘나 잘했어. 100점이야.

100점 맞은 김에 더해볼까? 엄마 손주가 11명이잖아.

그 손주들이 결혼해서 엄마 증손주가 있을까? 없을까? 있겠지. 맞아, 큰손주 주노가 손주 둘을 낳았어.

아까 11명 손주에 증손주 둘을 더하면? 11에 둘을 더하면 열다섯~! ㅎㅎ 엄마 , 이제 어렵구나.

열셋이야.  다시 작은손주 미노가 증손녀 둘을 낳았어. 13+2=열다섯~! 와~ 엄마 잘했어. 이번엔 맞췄네.

이제 큰손녀딸 은경이가 증손자 둘을 낳았어. 15+2= 열아홉~ ㅎㅎ 땡~ 엄마 틀렸다. 열일곱이지.

작은손녀딸 미니가 증손자 하나를 낳았어. 열일곱에 하나를 더하면? 열여덜~ 오 이번엔 잘했네.

엄마자식이 6명, 손주. 증손주 18명이면 엄마가 모두 24명의 자손을 본거야. 엄마 자식농사 풍년이 맞지~

거기에 사위 4명, 며느리 2명, 손주며느리 4명, 손주사위 2명을 더하면 36명의 후손을 본거잖아.

와~ 울엄마 대단하다. 그정도야 모~. 그땐 다 그만큼씩 낳았어. 

엄마 아주 훌륭해. 그럼 지금부터 숫자세기 해볼까? 더하기 잘했으니 숫자도 잘셀거야.

아까 엄마가 36명의 자손을 봤다고 했잖아. 그니까 36부터 가자고~ 서른 일곱, 서른여덜, ...... 마흔,

마흔하나...... 쉬인~ 쉰하나.......쉰! ㅎㅎ 엄마 쉰이 존가봐~ 쉰 다음엔 예순이지.

다시 예순하나, 예순 두울...... 이른~ 오 잘했어. 일흔하나, 이른두울~ ......예순!  ㅎㅎ 아니 여든, 

여든하나......쉰! 엄마 젊어지고 싶구나~ 암만 그래도 엄만 쉰이 못된다. ㅎㅎ 아흔~ ......아흔다섯~

아흔다섯이 엄마 나이야. 내가 아흔다섯이나 먹었어? 넘 오래 살았네.

아직 100살도 아닌데 몰~ 아휴~ 오래살믄 자식들이 고상인데......'

자식들이 낳은 손주들 명수로 더하기 공부?도 하고 숫자도 세고, 36명 자손들 이름도 하나씩 따라부르던

오늘 엄마의 시간은 엄마의 기억회로에 잘 저장이 되었을까?

 

눈을 감고 경건하게 드리는 기도
엄마의 기도, 사뭇 간절하다.

다시 면회를 마무리할 시간, 기도하자는 딸 말에 손을 모으는 엄마는 진지하다.

주모경과 구원의 기도가 간절한 엄마의 몸짓에 그대로 드러난다.

엄마는 저 기도 속에 어떤 바램을 녹여넣었을까~?

'담주에 만나요~ 그래 잘가~' 담담한 인사를 끝으로 엄마는 무념무상의 방으로 들어가고 

딸은 복잡한 마음 추스르며 차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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