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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

12월 7-8일, 엄마

babforme 2021. 12. 9. 21:55

암것도 가져 오지 말라는 엄마 말씀에도 혹시 싶어 간단하게 챙겨 나서는 길,
혹시 잃은 입맛 돌아올까 집에 있는 검정깨를 모두 털어 깨죽을 쒔다.

 

마침 엄마 휴대폰에서 '17시 30분' 알림말이 카랑하게 들리고,
'엄마 휴대폰이 지금 몇시라고 했어? 5시 30분~ 오 잘했어요. 
저렇게 십몇시라 하면 얼마를 빼라고 했쥬? 니가 12를 빼라고 했잖아.' 기분좋게 대답하신다.
이렇게 딸 기분을 up시키던 엄마가 불현듯 하시는 엉뚱한  이야기, 에구구 어쩌? 
'내가 작은 메누리에게 말했어. 몰? 니가 작은 메누리 싫어하니까 여기 오지 말라고~
엉,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왜 작은올케언닐 싫어해? 그런 말을 진짜 했어?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 작은올케언니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아니면 말구~ 니가 늙은이가 망령나서 헛소리했다고 말해~'
아아~엄마 왜이래? 제발 정신줄 좀 놓지마셔, 넘 슬퍼서 딸이 힘들다구요,
믿고 싶지 않은 엄마의 치매는 엄마의 성정을 시도 때도 없이 흔들어 놓는다.

 

'엄마, 지금 요양사선생님이 잘보살펴주시는데 혹시 수녀님이 엄마를 보살펴주시면 어떨거 같아?' 슬쩍 흘려본다.
'수녀님이 보살펴주셔도 좋겠지. 새기분도 들고 수녀님이니 잘해주시겠지~'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엄마, 오빠네서 가시자해도 싫다시던 엄마가 갑자기 뜬금포로 큰오빠네로 가시겠댄다. 
'오빠에게 가겠다고 엄마가 얘기했어? 이제 해야지. 안델구 감 여기 있고, 델구가서 힘들면 수녀님에게 보내겠지.'
갈때 tv랑 옷티랑 종이속옷이랑 가져 가겠다고.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하고 가고 싶은데 그게 될지 모르겠다고
오빠가 바빠서 부탁할 수 없다며 침을 삼킨다.
'고마운분들께 인사하고 가겠다 오빠에게 말하면 데려다 줄거니 걱정하지 마, 엄마.' 목이 메인다. 
'나 죽으면 옷 일부러 사지 말라'며 '아버지 수의할 때 해놓은 엄마꺼 반닫이에 들어있다'는 말씀도 하시고
'엄마가 안양으로 가면 너도 수원에서 오기 쉽겠다'며 주변정리를 하시는 말씀을 하신다.
93년을 산 이곳을 떠날 생각에 두 손을 모은 엄마 표정이 복잡하다. 

 

깨죽 쒀왔으니 같이 저녁먹자는 딸 말에 아무것도 드시지 않겠다고 역정을 내신다.

안흥을 떠나야한다는 생각에 온몸이 음식을 거부하는것 같아 아픈 마음!

아직 엄마에게 정식으로 말도 안했는데 자식들 움직이는 분위기로 눈치를 채신듯 식사를 못하신다.

 

 '그래, 엄마 하나도 안주고 나혼자 다먹을 거다. 엄마가 아무리 달라고 해도 안줄거다.

나도 달라고 안한다. 너나 많이 먹어라.' 한참의 실랑이,

결국 딸 혼자 꺽꺽 목이 메며 짭쪼름한 눈물 반찬으로 아구아구 죽을 먹는다.

 

힘들게 내린 마음 결정을 입밖에 내고 저녁먹기로 실랑이를 벌인게 피곤하셨나보다.

주무시는 잠깐 사이 악몽을 꾸셨는지 소스라쳐 놀라는 엄마를 깨운다.

 

잠에서 깨신 엄마, 꿈속에서 무서운 걸 봤다며 몸서리 한번 치시더니 천연스레

'딸이 쒀온 죽을 좀 먹어볼까나~ 죽 좀 줘!' 하신다. 우와~ 반가운 소리!

죽 한숟갈 드시다 문득, '에고~ 내가 빈덕이 죽끓는다. 먹는댔다, 안먹는댔다.'

'그러게 죽이 막 끓네~' ㅎㅎ 웃으며 저럴 땐 또 너무 말짱하신데 가슴이 싸해진다.

다드시고 난 뒤 한 말씀, '근데 깨죽이 그리 꼬숩지는 않네.' 착잡했던 내가 빵터져 ㅍㅎㅎ~ 웃는다.

내일이 돼봐야 알겠지만 낼 아침에도 죽을 드시겠다니 다행!

 

늦은? 저녁식사에 8시면 전화로 기도봉사하시는 안젤라님의 전화를 늦추었다.

8시 30분쯤 걸려온 전화에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노라시며 묵주기도 시작,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2단쯤부터 모기소리로 바뀐다.

옆에서 같이 하며 '엄마 목소리 좀 키워봐요.' 주문을 넣어보지만 이내 작아지는 목소리.

잘드시지 않으니 목소리도 기력이 떨어지는데, 이런 모습 처음이다. 가슴이 철렁!

 

이래저래 힘들게 기도가 끝난 뒤 드시게 된 치매약 때문인지 9시 20분부터 곤하게 주무신다.

늘 잠을 못주무셔 같이 잠을 못잤는데 이젠 너무 주무시니 잠을 못자겠다.

엄마가 숨을 쉬는지 확인하느라 온 밤을 지샌다.

 

9시쯤 엄마를 깨워 아침을 먹는다.

늘 드시던 방법대로 죽 한숟갈에 카스테라 한조각을 반찬처럼 드신다.

그동안 많이 달라던 물렁한 햄이나 감자 반찬도 두어번 조금씩만 달라시곤 끝이다. 

그래도 요만큼이래도 드셨으니 다행이다.

 

이제 또 요양사선생님과 교대?할 시간, 늘 했던 것처럼 찍는 인증샷! 

엄마는 요양사선생님에게 다음 주말에 온다는 별이 내외 줄 돈이 준비됐는가 확인을 하고, 

금욜에 이서방과 같이 오겠다니 이서방 줄 용돈도 준비해 달랜다. 

밖에 나와 요양사선생님에게 글라라의 집 대기접수건과 아침에 드신 식사량도 얘기를 하고,

나보다 엄마의 일상을 더 많이 아는 요양사선생님과 엄마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이웃사촌 아들이 밖에서 열닫을 수 있도록 해준 문고리

요양사 선생님 퇴근 뒤 엄마가 안에서 잠가야 했던 방문고리를 이웃사촌 아들,

상식아우가 오늘 밖에서 잠그고 여닫는 고리로 고쳐주었다.

눈이 안보이는 엄마가 더듬어 문을 잠그고, 더듬어 나와 문을 열어야 하는 방문고리를

이제 밖에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잠그고 열고 할 수 있어 엄마를 찾는 이들도,

엄마도 서로 맘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식들 시간이 어긋날 때 엄마의 긴긴밤 함께 해주는 레지나 형님이나

일상의 불편함을 옆에서 살뜰히 챙겨주는 상식아우나

그밖의 이웃사촌들 덕에 엄마 노년의 삶의자리가 나름은 평화롭다.

90평생 엄마가 살아온 날들이 노년에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 키우는데만이 아닌 노년을 마무리하는데도 온동네 공동체가 필요하다.

참 고마운 이들~

 

엄마가 안드시고 못드셔 냉동고에서 꽁꽁 언채 세월을 보내는 음식들

엄마가 냉동고에 있는 것들 다챙겨가란 말에 그동안 좀 드실까 싶어 가져갔던 죽이며 차돌이며 도로 챙겨온다.

엄마 냉동고 털어 내 냉동고 채운다. 고기 부자, 죽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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