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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

9월 21일, 엄마 그리고 10월 5-6일, 엄마

babforme 2021. 10. 10. 18:16

9월 21일 엄마

 

코로나 때문에 명절같지 않은 명절이 또 지나가고 있다.

이번 명절엔 집에서 아무런 음식을 하지도 않았다. 걍 일상처럼 과일과 떡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식구들 함께 구워 먹으려 준비한 소고기를 아이스팩에 넣어 엄마에게 갈 준비를 한다.

엄마는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 아침에 많이 먹었다는 말씀만 하시더니 소화제 한웅큼 드시고 내내 주무셨다.

이래저래 한가위를 보내고 휘영청 뜬 달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길,

잘드셨었는데 갑자기 왜저러시지? 아흔세살, 적은 연세가 아니라 문득 드는 생각을 털어내며

맘이 무거워진다.

 

2021년 한가위 보름달(9월 21일)
9월 21일 에그타르트 한조각을 드렸더니 입에 맞지 않은듯 인상을 쓰신다.

 

 

10월 5-6일 엄마

 

지난 한가위 때 엄마는 계속 주무시기만 했다.

오랜만에 손주들도 다 있고 집이 사람사는 집처럼 활기가 넘치는데도 엄마는 누워만 계셨다.

한가위 아침을 많이 드셔서 체했다고 소화제 한웅큼 드시고는 점심도 저녁도 드시지 않았다.

아침에 내려가 점심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오는 길 내내 편치가 않았다.

 

한가위 지나고 금욜 큰언니가 엄만테 갔다오는 길이라며 전화로 한걱정이다. 

엄마가 암것도 못드셨다고, 몬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한가위부터 나흘째인데......)

 글고 한주가 시작되고 화욜, 가겠다 했더니 오지 말라는 엄마 목소리가 쌩쌩하다.

체기가 내리고 식사를 하셨단다.

 

한주 늦춰 필요한것 암것도 없다는, 오지말라는 엄마 성화들으며

용인 손녀딸이 보내는 햄과 혹시 싶어 준비한 추어탕을 들고 엄마에게 간다.

 

오지 말라 성화더니 기분이 좋아진 엄마가 말씀이 많아지셨다.

그날 엄마는 딸과 손주들과 함께 가셨던 캄보디아로 추억여행을 떠나셨다.

드넓었던 톤레삽호수가 엄마 기억엔 바다로 남아 그 놀라웠던 바다이야기를,

그 바다에 수상가옥을 짓고 살던 고향 떠나온 베트남 난민?을,

구렁이를 목에 걸었던 한결이, 주헌이 얘기도 하시고~

앙코르왓3층 중앙탑에 올라갈 때 고소공포증 때문에 못올라가고 망설이던 나보다 엄마는 먼저 올라가셨었지.

'그때 내가 너 욜케욜케 올라오라 말해줬잖아.

내려올 땐 해리와 한결이가 무섭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지~'

 

자식들 잘둬 4개 나라씩이나 여행하는 복을 누렸다고 고마워하신다.

우리랑 태국과 캄보디아, 오빠네랑 대만과 중국을 다녀오셨었지.

태국으로 시작한 엄마의 해외여행은 두아들네와 팔순기념으로 다녀온 중국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뒤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은 엄마는 깜깜한 터널 속으로 아득한 시간여행을 떠나셨다.

 

그날 엄마는 주무시기 전까지 한번 눕지도 않고 꼿꼿이 앉아 행복한 옛 기억을 길어올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시, 응송으로 바치는 삼종기도를 온전하게 하신다.
추어탕으로 드시는 저녁

그동안 아침만 드셨어서 저녁을 안드시겠단다.

집에 가만 앉아있으니 배가 고프지 않아 아침 한끼로도 충분해 저녁은 안드신다고~

처음 듣는 말~ 8월에 갔을때는 아니었는데..... 가슴이 무너진다.

그래도 좀 드셔야지, 어케 한끼로 버티려고~ 추어탕에 조금만 드셔.

어렵지 않은 딸밥이니 한숟갈 먹어볼까?

엄마 마음대로 못움직여 도움이 필요한 엄마가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순간 울컥~

반공기도 안되는 추어탕에 밥 한숟가락 말아드리며 눈물을 쏟는다.

 

미역국으로 드시는 아침
냉동실에서 묵삭인 닭곰탕과 떡볶이 그리고 고구마

석봉할머니가 가져왔다는 고구마에 꽂힌 엄마 말대로 저녁내내 고구마 찾느라 밤이 깊고 

어디에도 없는 고구마에 큰오빠까지 호출하고야 엄마가 먼 기억 한자락을 현실로 끌어온 헤프닝인걸 알게 됐지.

보이지 않는 세상에 혼자 남아 뒤죽박죽 생각이 현실이 되는 상황,

엄마는 자신이 바보같다며 자식에게 거짓말만 해서 지옥에 갈거라고 또 한참 자책을 하고,

나는 자식들 덕에 여기서 천국을 산다 하시던 어제 저녁 엄마말을 되돌려

살아서 천국을 사는 사람은 절대로 지옥에 안간다 너스레를 떨고~

 

김과 건강차
엄마가 안드신 냉동실 닭곰탕은
울집에 와서 숙주와 고사리, 고추기름을 만나 닭개장으로 거듭났다.

다가져가라는 엄마 성화에 엄마네 집을 털어왔다.

냉동실에 얼어있던 떡볶이와 닭곰탕, 조금 있던 고구마,

물에 타먹는 건강음료와 김도 챙겼다.

요양사 선생님이 한번씩 드시고 안드시는 것들이니 다가져가라신다.

입맛에 따라 한번 드시고 아니면 안드시니 버리는 것보다 누군가가 먹는게 낫다고.

한번 성화시면 끝까지 그러시니 걍 챙겨가란다.

 

그렇게 엄마네 냉동실을 털어 우리집 살림살이 많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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