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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 ㅍㅎㅎ~ 해미읍성 1, 5월 30일 본문

바람불어 좋은 날

우리끼리 ㅍㅎㅎ~ 해미읍성 1, 5월 30일

babforme 2022. 6. 2. 14:37

ㅇ젤라 형님과 ㅇ녜스 형님과 ㅈ마 형님이 오늘 함께 떠나는 길동무,

장안구청 앞에서 3분 형님들을 픽업한다.

오늘의 일정, 서산9경중 1경인 해미읍성을 눈에 담고 해미칼국수에서 점심을 먹은 뒤 해미성지 순례,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심드렁한 일상에 흔들리는 마음 쓰담쓰담 쉬다가 숸으로 돌아오기.

지난해부터 한번 가보리라 마음으로만 바쁘던 해미읍성에 드뎌 입성~~!!!

두둥~

 

세상에나~ 입장료도 주차비도 무료라니~~ 해미읍성 으뜸! 에헤라디여~~! ♬
해미읍성 정문, 진남문-세분 형님들 읍성을 향해 바쁘다, 바빠~
차곡차곡 쌓아올린 성벽 돌들이 정갈하다.
동헌 - 근데 ㅈ마 형님 모가 그리 바쁘대유? ㅎㅎ
내실
객사
오~ 무서운 군인아저씨, 그옆에 있던 군인아저씬 졸고 있기에 높은분한테 혼날까 사진을 못찍어드렸다. ㅎㅎㅎ
조선시대 무기, 칼과 대포와 활들?
읍성 돌성벽이 단아하다.

서산 해미읍성(瑞山 海美邑城)은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읍성으로

조선시대에 건축되었으나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이은 넓은 평지에 축조된 성으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위로 갈수록 크기가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다.

성의 총길이 1,800m, 성벽 높이 4.9m, 성벽 안쪽을 흙으로 채운 내탁공법?으로 쌓았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 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진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 말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 빈번히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피해를 입히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조선 태종17년(1417)부터 세종3년(1421)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이 곳으로 옮기려고  축성(築城)되었으며,

효종3년(1652)에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성이었다.

병마절도사영을 청주로 옮긴 뒤 해미현의 관아를 이 성에 두었다.

1914년까지 문무를 겸한 겸영장(兼營將)이 배치되는 호서좌영으로서 내포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하며

호서지방 행정중심지 역할을 했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말기 천주교 박해당시 약 1천여 명 이상의 신자들이 순교당한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해미라는 지명은 조선 태종 7년 1407년에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병합하면서

정해현에서 해(海)자를 따고 여미현에서 미(美)자를 가져와 해미(海美)로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삼년산성 등이 산에 쌓은 산성이라면, 진주성, 공산성, 사비성은 강을 낀 산에 건설되고

해미읍성은 평지에 타원형으로 지은 것이 특징으로 대략 달걀 모양과 비슷하다.
이 읍성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부속 건물들이 빼곡히 있었으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도 일부 남아 있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와,

현재의 아문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외곽석장기지(官衙外廓石牆基址)가 발견되었다.

성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순교기념비
회화나무

호야나무라고도 부르는 이 회화나무는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제172호로 300살 이상일거래.

1866년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니,

회화나무는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겪은 놀랍고 두려웠던 그 아픔을 다 잊었을까?

 

삼지창을 든 군인아저씨가 지키고 있는 옥사입구
천주교인들을 매달아 고문했던 회화나무와 고문하고 가두웠던 옥사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 때 천주교신자로 해미읍으로 유배를 왔었으나 

정조의 비호로 10일 만에 유배가 해제되었다지. 

정조 사후 순조  1801년(신유박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병인양요, 1868년 남영군분묘도굴사건 이후 더욱 심해졌지.

조선 후기 충청도 서북 지역(내포지방 13개군현)의 군사와 치안을 함께 맡았던 해미진영(海美鎭營)은

이 지역 천주교 신자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임무도 맡고 있었다네.

그래서 해당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모두 잡아들여 해미읍성에서 처형하였는데

당시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은 무려 1,000여명 이상이었다고 하네.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린 이름도 알 수 없는 신앙선조들, 지금 그분 곁에서 행복하겠지~!

 

해미읍성 마늘빵 까페에서 보는 가톨릭 십자가 문양 화분

읍성 입장료를 안받는다는 안내문에 '에헤라디여~' 기분좋게 진남문을 들어가자마자

왼쪽에 보이는 '교황님이 드신 kiss ring 마늘빵' 이라는 펼침막!

해미읍성역사본존회에서 운영하는 '해미읍성 마늘빵 까페'에 내걸린 펼침막이었다.

교황빵이라고도 한다는 마늘빵? 글믄 함먹어봐야지, 까페로 들어간다.

커단 도넛같은 빵 하나에 거금 7천원~ ㅎㅎ 쬐금 ㅎㄷㄷ하네!

4조각으로 나누어 한조각씩  맛보기, 마늘빵이라 딱딱할 듯하여 안먹음요 외쳤는데 얼러리여~ 디따 부드럽고 촉촉하네. 

옹옹~ 맛있어라, ㅈ마 형님이 준비해온 아메리카노와 함께 게눈을 감춰주고~ ㅎㅎ

 

동헌 옆 숲에 자리한 멋진 소나무
동헌과 부속건물들
객사 뒷담과 개복숭아
십자가의 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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