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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이 차려준 내 생일상~디따 당케!!!

babforme 2019. 3. 2. 12:54

친정엄마와 생일이 같은

나는 생일밥을 여러번 먹는다.

지난주 토요일 엄마 생신을 날짜에 앞당겨 했고,

내생일은 울식구들 편한 3.1절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대만을 여행하며 현지음식 동파육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을 보고 동파육이 급궁금.

하여 저녁을 중국요리로~

 

우리집에서 가까운 곳에 길림성이라는,

맛집으로 꽤 유명한 중국음식점이 있다.

3층 방은 이틀전임에도 이미 예약이 꽉차 있었다.

할 수 없이 예약이 안되는

2층 홀에서 당일 식사하는 걸로 결정~ 

 

해물누룽지 스프~

이거 참 좋아하는데, 누룽지가 약간 적은 듯~

 

사품냉채

 

해분 샥스핀

 

전복요리

 

간풍중새우

 

동파육

 

고추잡채+꽃빵

 

고추잡채에 고추는 없고 파만 잔뜩 있었다는...

식재료가 떨어졌었나~ 기분 살짝 안좋았음~

그러나 아들들이 밥을 쏘는 좋은날, 기분좋게 먹고 오려 클레임 걸지 않음~

 

기스면, 짜장

 

기스면 국물엔 달걀이 헤엄만 치다 걍 갔나보다. 파만 둥둥 떠 있다.

이번 코스요리는 별반 점수를 주고 싶지 않음요~ ㅠ ㅠ

 

그래도 식구들과 함께 한 좋은날이라 암말 않고 먹기

- 그리고 이렇게 소심하게 블질로 뒷담화~ ㅎㅎ

 

후식

 

요 차례로 음식이 나오다.

 

 

식당에서

 

  

 

  

집에서 받은 케잌과 가방선물~

 

 

처음 먹어본 동파육은 아주 부드러웠다.

중국음식 특유의 향이 가미된, 부드러운 우리나라 보쌈(?) 같은 요리~

비주얼은 TV에서 본 대만 음식점의 그것과 좀 달라보이기도 했고~

 

 

 ‘동파육(東坡肉)’이 유명한 까닭은 음식 이름의 유래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바로 송대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소식(蘇軾)의 호 동파(東坡)에서 따온 것.

 

이 음식은

중국술 ‘백주’와 곁들여 먹어야 맛이 난다나~

 

구법당파에 속했던 소식은
개혁파가 득세하자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그는 호북성 ‘황주(黃州) 단련부사 본주안치’로 좌천되었다.

단련부사는 지방군사보좌관이지만, 명칭만 있는 한직이었고,

‘본주안치(本州安置)’란 그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으로, 사실상 유배였다.
황주는 지금의 호북성 황강시(黃岡市)이다.

황주에 도착한 소식은 경제적으로 매우 궁색한 생활을 하였는데,

친구 마정경(馬正卿)이 관청에 청하여 동쪽 언덕(東坡)에 있는

 황무지를 소식에게 주었다.

소식은 그 땅을 경작해 식량을 보탰다고.

 그는 당시의 심정을 ‘동쪽언덕(東坡)’이라는 시에서 읊었다.

 

東坡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황폐한 보루터
무너진 담엔 쑥대만 가득하구나
누가 힘을 쏟을 수 있으랴
세밑에도 그 수고를 보상받을 수 없을텐데
외로운 나그네만은 하늘끝에서 도망갈 곳 없구나
곧바로 달려와 기와와 자갈 주워내지만
시절 가물어 땅도 기름지지 않구나
고생스럽게 가시덤불 속에 있는 건
키 작은 곡식이나마 거두려 함이라
쟁기 놓고 후유 탄식함은
내 창고 어느 때 쌓일까 해서이네

 

소동파는 황주에서 손수 음식을 해서 먹었는데, 하루는 친구 마정경이 찾아왔다.
소동파는 친구를 위해 돼지고기 요리를 시작했다.

냄비에 돼지고기와 채소를 넣고 불을 약하게 한 뒤 친구와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바둑에 빠진 두 사람은 불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놓은 사실을 잊어버렸다.

마지막판이 되어서야

소식은 요리를 떠올리고는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가, 뚜껑을 열어보았다.

새까맣게 타있을 줄 알았던 돼지고기 요리는

오히려 빛깔이 불그스름하고 향기가 진한 요리로 변해 있었다.

입 안에 넣어도 느끼한 맛 대신에 사르르 녹았다.

소동파는 이 요리를 친구에게 대접했고,

그 친구는 음식 맛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소동파는 이런 내용을 시로 남겨놓았다.

 

黃州好猪肉, 價賤等糞土

황주의 좋은 돼지고기, 가격은 헐값이네
富者不肯食, 貧者不解煮

부자는 먹으려 하지 않고, 가난한 자들은 삶는 법을 모르네
慢著火 少著水 火候足時타自美

불을 약하게 하고 물을 적게 넣고 오래 두면 저절로 기똥찬 맛이 되거늘
每日起來打一自家君碗 飽得莫管

매일 일어나 한 그릇 먹으면 배가 부르니 그대는 상관말게

 

10년이 지난 뒤 신종(神宗)이 즉위하자 소동파도 복권되었다.

그가 항주 태수로 임지에 도착해보니 서호(西湖)를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황폐해져 있었다.

이에 조정의 재정지원을 받아 서호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는데,

20만명의 백성이 동원되었다.

이렇게 서호가 말끔히 정비되자,

백성들이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각종 농산물을 바쳤다.

그 중에 돼지고기를 바치는 사람도 있었는데,

소동파는 그것을 혼자 먹지 않고 큰 솥에 돼지고기와 채소를 넣고

자신의 요리법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백성들이 그 맛에 탄복하며 그의 호인 동파를 따서

‘동파육(중국발음 동뽀로우/dong bo rou)’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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